

신항섭(미술평론가)
전통적인 회화인 수묵화를 볼 수 있는 전시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는 단지 하나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진행돼 온 일이다. 각 미술대학에서 한국화 학과가 통폐합되거나 아예 없어지는 일이 시작되어 왔기 때문이다. 수묵화와 채색화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한국화 학과가 없어지는 건 입시 지망생이 없어서이다. 입시 지망생이 없다는 건 미술시장에서 수요가 없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대략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원색을 선호하는 사회적인 현상이요, 다른 하나는 수묵화 자체의 내부적인 문제일 수 있다. 수묵화 인구도 적을뿐더러 시대가 요구하는, 즉 현대인의 미적 감각에 부응하는 새로운 작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전래의 화풍이나 기법에 갇혀서는 나날이 달라지는 현대인의 미적인 안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소수의 수묵화 작가는 개별적인 형식을 탐색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월하 박춘근은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에서도 기존의 수묵화와는 다른 길을 찾아 암중모색해 왔다. 수묵산수 가운데 남화가 대세인 한국화단에서 그의 수묵산수는 기존의 화법이나 필법과 다른 독자적인 화풍을 지향했다. 남화의 지류라고 했으나, 그 어느 특정 작가의 화풍도 따르지 않았고 닮지도 않았다. 초기 작업이 실경산수였다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오로지 실력을 갖추는 데 집중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을 뿐이다. 남화가 대세를 이루는 화단 분위기에서 독자적인 화풍을 일구려 한다는 사실은 곧 주류에서 벗어나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그는 제도권의 관심 밖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화풍을 만들어내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거느리게 되었으며, 마침내 독립적인 화풍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산수화는 새로운 필법을 모색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나의 예를 들면 전래의 많고 많은 준법이 있는데도 애써 그로부터 자유로운 독자적인 준법을 모색하는 데 집중했다. 창작이란 궁극적으로 남과 다른 독창적인 세계를 일구는 것이라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법 또는 화법이 남다르면 그로부터 새로운 창작의 길이 열린다. 이를 일찍이 간파했기에 기존의 화법을 따르면 되는, 쉬운 길을 마다하고 고난의 길을 자초했다.
그의 수묵산수가 남화의 화풍에서 벗어나게 된 건 직선적인 필선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직선이라는 개념은 한자의 예서나 전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체에서 획은 수평 수직을 중심으로 행해진다. 이를 수묵산수에 적용하니 자연스럽게 직선적인 필선을 원용한 산수가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그의 산수는 몰골법이나 구륵법이 아닌 독특한 화풍을 수립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그의 수묵산수는 골격을 이루는 바위산을 표현하는 준법에서 독자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바위를 형용하는 데 직선을 이용하는, 특이한 조형적인 해석이 그 성과물이다. 실제로 그의 산수화는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이루어지는 독특한 준법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형태의 수묵산수 준법이 가능하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어쨌든지 이전까지 본 일이 없는 준법임에도 이질적이거나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수묵산수의 화풍 하나를 추가했다는 평가가 과하지 않다.
여기까지 이르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우선 산수화 작가로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실사를 통해 대자연을 숙지하는 일은 필수적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사색과 사유의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고, 아름다운 산하가 가지고 있는 형태미뿐만 아니라 생명에의 통찰을 통한 철학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사실을 그대로 옮겨오는 실사를 통해 어느 순간 심상화가 가능하게 되었고, 물상을 자유롭게 형용하는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다. 실상을 눈앞에 두지 않고도 능히 형사가 가능한 상태, 즉 심상으로 간직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 판단했을 때 비로소 독립적인 조형성을 모색할 수 있었다.
그가 채택한 직선적인 준은 수묵산수의 새로운 형식적인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이전까지는 직선의 준이란 생각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직선적인 선을 이용한 준으로 바위산을 형상화한 그의 산수는 조형적으로 신개념이다. 직선이 모여 바위를 이룰 수 있다는 독특한 발상이야말로 준법의 초석이었다. 무언가 억지스러운 듯싶으나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자연은 구형, 원통형, 원추형에서 비롯된다’는 세잔느의 조형적인 이론을 그의 수묵산수화에 적용하면 ‘바위는 수직선, 수평선, 사각형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그의 수묵산수에서 이룩한 성과, 즉 준법에 적용하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직선적인 필선으로 바위, 즉 준을 묘사하겠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앞서 한자의 서체 가운데 예서나 전서에서 볼 수 있는 획의 모양새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가 오랫동안 훈민정음 한글체를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면 수긍할 수 있다. 또한 어려서부터 한자와 서예를 배웠다는 사실도 물상의 형태를 분석적으로 볼 수 있는 동기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실제적인 동기는 훈민정음의 월인천강지곡이나 용비어천가의 각진 형태의 한글 자체와도 연결된다. 한글을 창제할 당시에 쓰인 각진 한글체는 한자 서예의 예서나 전서와는 또 다른 직선적인 형태이기에 그렇다. 더구나 각진 한글체가 회화적인 소재로 쓰이게 된 이후의 작품에서 직선적인 형태의 이미지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미적인 쾌감으로 작용한다.
그가 한글 서체를 그림에 적용하게 된 건 어려서부터 한자를 공부했고 그 과정에서 서예를 익혔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글씨와 그림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서화동원론이 말하듯이 서체를 익힘으로써 그림으로 입문하는 건 자연스럽다. 글씨와 그림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하는 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음을 말하는 것이다. 상형문자가 한자의 기원이고 그림 또한 그 형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얘기다. 어떻든 그의 수묵산수에서 쓰이는 직선은 그림보다는 서체에 더 가깝고, 서체 가운데서도 훈민정음 창제 때 고안한 굵고 명료하며 힘차게 느껴지는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의 한글체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최근에 이룬 큰 성과로 평가할만한, <훈민정음 한국화>라는 명제를 가진 일련의 근작들은 한글체를 산수화나 문인화에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글체가 산수풍경 속에 그대로 뛰어든다는 건 그림에 관한 상식으로는 얼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수묵화에서 그림의 내용을 설명하는 화제는 한자만이 아니라 한글로도 쓰이고 있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글씨가 그림의 소재로 쓰인다는 건 여전히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그의 <훈민정음 한국화>를 보면 기존의 수묵산수나 문인화와는 완연히 다른 세계여서 한글체가 그림의 소재로 등장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지 않다. 훈민정음의 한글체는 문인화, 즉 사군자 화목과 함께 등장할 때 더욱 잘 어울린다. 글씨와 그림이 하나의 화면에서 공존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세기 초반 러시아 아방가르드 회화에 이미 글씨가 조형적인 요소의 하나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현대미학의 영역은 확장일로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고 보면 그의 문인화에 훈민정음 한글체 모음자를 소재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건 억지스러운 일이 아니다. 전례가 없었을 뿐이지 생뚱맞은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가 문인화에 한글체를 도입하는 것은 그 형식적인 자유로움 때문이다.
문인화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산수화보다는 한결 자유롭다. 물론 넓은 시각에서 보면 산수화도 문인화의 한 화목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오늘의 관점에서 산수화는 엄연히 독립적인 회화 장르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볼 때 <훈민정음 한국화>라는 용어 자체가 회화 장르로서의 독립성을 전제로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또한 개별적인 형식미학에 관한 확고한 신념이 뒷받침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형식미를 구현했다는 건 단순히 용어적인 독립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형적인 독립성을 전제로 한다. 그 성과의 중심에 다름 아닌 훈민정음 한글체 모음자가 자리한다.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 한글 모음자를 조형적인 요소로 받아들인 것이다.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에서 볼 수 있는 한글체는 오늘의 활자체에서 볼 수 있는 고딕체와 닮았다. 어쩌면 고딕체가 초기 한글체를 응용했는지도 모른다. 두 글자체의 유사성이 크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떻든지 두툼하고 굵직하게 보이는 막대 모양의, 한글체를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이전의 문인화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조성한다. 사군자인 매, 란, 국, 죽을 기반으로 하는 전형적인 문인화 화목과 한글체가 한데 어우러지는 <훈민정음 한국화>는 한마디로 문인화의 혁신이다. 매란국죽 사군자 화목을 다양하게 배치하는 가운데 적당한 위치에 한글체 모음자가 자리를 잡는 식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상징하는 한글체 모음은 사상 및 철학적인 사고의 산물인데, 그 구조가 아주 간결할뿐더러 시각적인 이미지도 명료하다. 그의 작품에서 여러 개의 모음이 일정한 질서를 형성하는가 하면 낱자로 흩어져 자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수직으로 열을 지어 배치되거나 횡렬을 이루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느 한 부분에 집중적으로 배치하거나 이곳저곳으로 산개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떤 식으로 배치하든지 간에 농묵으로 묘사되는 한글체는 그 존재감이 너무 뚜렷해서 그 주변이 등불처럼 밝아 보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글자에는 다른 이미지가 침범하지 않아 마치 여백처럼 보인다. 이러한 구성은 한글체가 그만큼 강렬한 존재감으로 화면을 장악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렇듯이 훈민정음 한글체는 모음만을 배치하기도 하지만 작품에 따라서는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의 문구를 그대로 가져오기도 한다. 그림에 문자가 들어가는 건 동양의 회화에서는 놀랄 일이 아니다. 그림의 내용을 말하는 화제는 조형적인 요소의 하나로 받아들이게 된 건 아주 오랜 일이다. 동양의 회화에서 그림 속에 화제를 넣어 그림을 설명한 건 표현양식의 전통이다. 글씨와 그림이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여기에서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한글체 문자와 사군자 화목의 조합은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사군자 화목과 한글체가 스스럼없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전체적인 소재의 배치 또는 구성에 그 답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군자 그림에서는 화목을 하나 또는 두세 개 식으로 구성한다. 그런 경우 필연적으로 여백이 따른다. 다시 말해 매화 그림에서는 매화 등걸과 줄기 및 가지를 화면의 한 부분으로 치우쳐 배치한다. 그러고 나면 그 반대편은 여백으로 남겨진다. 이러한 구도가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다.
그는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재를 배치하고 구성한다. 한마디로 사군자 화목 그 전부를 하나의 화면에 가득 채우는 식이다. 그러므로 여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문인화에서 여백을 두지 않는다는 건 이상한 일일 수 있다. 기존의 사군자 그림에 익숙한 눈으로는 생경하고 낯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으로서의 요건에서 벗어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제까지 볼 수 없는 소재의 배치 및 구성이어서 신선하다. 여백을 중시해온 수묵화 또는 문인화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순간 현대적인 미학과 상통하는 새로운 조형성과 만나게 된다.
여러 가지 소재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하나하나의 화목을 분별해내기 힘들 정도로 복잡해 보이는 구성 자체가 파격이다. 사군자 화목 하나하나를 뚜렷이 구별하기도 어려울 만큼 조밀하게 구성된다. 서로 엉키어 있는 듯한 구성이어서 사군자 화목조차 분별하기 쉽지 않을 정도이다. 이처럼 복잡한 구성인데도 오히려 짙은 수묵의 멋이 새롭게 느껴진다. 소재 하나하나의 이미지를 찾아내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짙은 수묵이 지어내는 힘은 시각적인 강렬함으로 다가선다. 시각적으로 복잡하고 혼잡스러워 보이는 건 여백이 없는 화면 구성이 생소하기 때문일 따름이다.
사군자 화목의 문인화에서 소재 개개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 밀집된 구성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아주 태연히 화면을 빼곡하게 채운다. 빈틈이 없는 밀집된 소재의 배치는 기존의 여백 개념에 상치된다. 소재의 형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군자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필선이 어떻게 움직여 형태를 찾아내는지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는 게 사군자이다. 이러한 사군자의 공식을 무시한 채 사군자 화목을 섞어 놓고 집적시킨다는 발상이 놀랍다.
이는 현대미학과의 접목이라는 열린 시각에 의한 새로운 방법적인 성과이다. 기존의 조형적인 형식이나 질서를 개의치 않는 전혀 새로운 발상으로 수묵화의 현대적인 해석을 모색한다. 이는 어쩌면 현대미학의 한 성과인 전면회화에 관한 접근일 수 있다. 그림의 주제나 이미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기존의 화면 구성에 구애받지 않고, 화면 전체를 균등한 이미지로 채우는 전면회화와 상통하기에 그렇다. 그의 <훈민정음 한국화>도 전면회화의 형식적인 미학과 연관성을 가진다. 물론 훈민정음 한글체가 작품에 따라 여기저기 자유롭게 배치되고 있으나 그림의 주제 또는 중심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없다. 하나의 작품을 형성하는 소재 또는 구성 요소로 존재할 따름이다. 즉, 직선 형태를 가진 월인천강지곡이나 월인천강지곡의 한글체가 고딕체와 유사해 그 존재감이 뚜렷하게 드러날 뿐, 전체적인 이미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어느 특정 소재 또는 화목이 그림을 주도하는 일반적인 문인화의 형식과는 전혀 다른 전면회화에 근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문인화 또는 수묵산수화의 습속을 벗어난, 현대인의 미적 감각에 부응하는 새로운 조형적인 어법인 셈이다. 따라서 <훈민정음 한국화>라는 대명제를 가지는 그의 현대적인 문인화는 한국화의 진로에 관한 하나의 답이라고 할 수 있다.
<훈민정음 한국화>는 소재의 밀집이라는 구성도 그러하거니와 격식을 깨뜨리는 운필이 한껏 자유롭다. 손에 익은 기술은 물론이려니와 심상조차 전혀 개의치 않은 자유롭고 활달한 필선의 운용은 파격의 연속이다. 문인화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할 만큼 기존의 격식이나 질서에 반하는 형식적인 특징을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문인화의 기초인 사군자를 배웠다고 생각할 수 없는, 거침없고 자유로운 필선에서는 미적인 쾌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아름답고 격조가 담긴 고상한 필선이란 찾아볼 수 없다. 잘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던져버린 채 오직 붓이 움직이는 대로 따르는 듯싶은 상황이 전개될 따름이다.
<훈민정음 한국화>라는 새로운 수묵화의 장르를 성립시키기 위한 전면회화의 형식적인 질서를 도입한 후, 그의 사군자 및 수묵산수도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한글체만 빠져있을 뿐 사군자 화목을 밀집시켜 자유롭게 배치하는 복잡한 구성은 여전하다. 그는 여기에서 새로운 한국화의 가능성과 마주하고 있다. 여백을 두고 필선의 아름다움과 기술적인 완성을 통해 격조 높은 문인화 또는 산수화를 뛰어넘는, 새로운 형식미학에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그의 도전과 야망은 한글체가 빠진 문인화 및 산수화에서 여실하다. 소재 배치 및 구성에서 새로운 조형적인 어법이라고 평가할만한 근래의 문인화 및 산수화는 기존의 조형 개념과 판이하다. 앞서 말했듯이 여백을 두지 않는 밀집된 소재 배치 및 구성은 현대미학의 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소재 배치 및 구성에 익숙한 눈에는 자칫 혼란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으나, 복잡한 구성이 주는 또 다른 형태의 미적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여기에서 문득 내고 박생광의 작업이 오버랩한다. 오방색을 중심으로 하는 전래의 민속신앙 및 불교, 그리고 민화를 비롯한 각종 전통 회화를 적절하게 혼용하는 박생광의 조형세계와 상통하는 점이 있기에 그렇다. 박생광이 채색 중심의 작업이라면 그는 수묵 중심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이미지를 한데 모아놓았다는 점에서는 유사성이 있다.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서로 다른 이미지를 모아놓은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의 경우에는 수묵 중심일뿐더러 산수와 사군자 화목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어떻든 박생광처럼 화면을 빈틈없이 채우는 그의 조형적인 특징은 한국화의 새로운 방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도 특기할 일이다.
가장 최근 작업에서는 담채 대신에 채색의 농도를 높임으로써 시각적인 호소력이 한층 크다. 색채의 채도를 높임으로써 수묵과의 극적인 대비를 의식하게 된 것이다. 이전의 담채에 서는 시각적인 자극이 약했다. 순화된 색채이미지를 통해 고상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걸 이상으로 여겼다. 이에 비해 근래에는 채도를 높여 짐짓 화려하면서도 자극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일부 작품은 수묵보다 채색의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질 정도이다. 수묵으로 형태를 잡고 채색으로 수식하는 설채 기법을 강화함으로써 채색화인지 분별하기 애매할 정도이다. 수묵화의 재발견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적극적이고 대담한 원색의 사용은, 기존의 수묵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인 발상이다.
검정과 유채색의 조합은 서로의 존재감을 부추기는 상승작용 효과가 있다. 좀 더 대담한 원색과 수묵의 조합이 이루어졌을 때 개별적인 형식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조형적인 관점은 그 지점을 상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늘 창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작업해 왔기 때문이다.
월하 박춘근의 근래 작업은 기존 문인화가 지향해온 일체의 조형적인 격식을 깨뜨리는 파격으로 일관한다. 최근에 완성한 대작(전지 6매를 이어붙인)‘ ’는 가히 전인미답의 전혀 새로운 개념의 문인화로 평가할만하다. 무엇보다도 사군자와 훈민정음 해례본의 28자가 함께하는 구성은 놀랄만한 조형적인 상상력의 소산이다. 화제로서의 문자가 들어가는 것이 관례인 문인화에서 훈민정음 글자체를 사군자와 함께 배치하는 것은 역외의 발상이다. 이처럼 기발한 착상에 의해 전개되는 월하의 문인화는 기존의 사군자가 가지고 있는 조형적인 질서에 대한 도발에 다름 아니다.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라는 사군자가 화목이 하나의 화폭에 혼재하는 가운데 간간히 훈민정음 글자체를 배치하는 특이한 구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간결함과 묵직함, 명확함 그리고 힘참이라는 형태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훈민정음 글자체의 시각적인 이미지는 사군자와 교묘히 어우러진다. 이처럼 글씨와 사군자가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것은 훈민정음 글자체의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무관하지 않다. 글자체 하나하나의 형태적인 아름다움이 사군자 화목과 절묘한 화음을 이루는 것이다.
월하는 여기에서 전래의 문인화가 구축해온 여백의 개념에 개의치 않는 자유로운 구성, 즉 어쩌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연출한다. 마치 실타래가 엉키듯 사군자 화목이 서로 섞이고 중첩되는 구성은 그야말로 파란의 연속이다. 여기에다 존재감이 뚜렷한 훈민정음 글자체가 개입되는 상황인데, 그 결말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자기존재감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훈민정음 글자체의 조형적인 마술에 걸린 듯 전체적인 구성이 되레 안정적이다.
기존의 사군자가 추구해온 정형화된 조형미 및 격식에서 일탈한 자유로운 운필이 만들어내는 분방한 구성이 오히려 시각적인 즐거움과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 질서를 깨뜨리는 번잡스러운 구성은 현대미학의 개념상으로서는 전혀 낯설지 않다. 번잡한 가운데서도 힘차게 화폭을 장악하는 훈민정음 글자체의 조형적인 존재감이야말로 이 작품이 달성한 또 다른 성과일 터이다.
글자체는 그 형태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조형적인 소재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여기에다 의 창제정신이라는 내적인 의미가 더해짐으로써 문인화의 본래적인 정신적인 가치에 부합한다.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탈속한 기운이 감지되는 것도 글자체가 내포한 세종대왕의 애민애족정신 그 순수성에 기인하리라. 이렇듯이 그의 작품은 한글 창제정신 그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사군자 화목이 지닌 문인화로서의 본래적인 목표를 구현하고 있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가치를 뼈대로 하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현대미학에 대한 전적인 동조가 함께 한다.
출처 : 더최고신문(http://www.thebest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