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수법 ]
月下 朴春根 화백의
敎授法과 學習
묵화는 직업적인 예술가만이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아무나 자기 흥취대로 다룰수 있다는데에 더 매력이있다. 세상을 그런데로 사노라면 어느 틈엔가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지니고 있는 높은 교양과 샇은 노력으로 이룬 인품감정 관용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매력과 멋으로 나타나는데 묵화는 바로 은근히 풍기는 매력에 멋이 길들여 있고 이런 인품은 가진 사람이 묵화를 치면 우선 예술적인 작품을 떠난 인격형성의 깊은 감정이 표현이 된다.이렇듯 묵화는 형식적인 외양(外樣)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은 수양(修樣)과 고상한 취미와 지적 활동으로 자신의 만족을 느낄수 있는 것이기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묵화를 낳는데는 지.필.묵.연(종이,붓,먹,벼루)등 다같이 호흡이 맞아야 하지만,그 가운데서도 먹의 향기와 화선지에 조화를 이루는 것이 으뜸이라 아니 할수 없다. 먹은 또 동양인의 특유물이다. 우선 동양의 산물 이라는데에 그 이유가 있지만 그보다 동양인의 성격에 가장 잘어울리고 알맞기 때문이다. 더욱 먹은 화선지 빛깔의 백색과는 상반된다. 흑과 백은 모든 빛깔의 양극으로 흑색은 먹색을 만들어 내는 세계에서 백색 은무에서 유를 낳을수 있는 근본적인 바탕이 되는 색으로서 무색이라 일컫지만 이 흑색 백색이 조화를 이룰 때 흑색은 고도로 추상화 한 구극(究極)의 빛으로 흑과 백은 곧 철학적인 묘한 경지까지 이르른다.
이렇게 되면 무는 유를 낳고 유 또한 무를 낳는다고 하는 동양철학의 바탕에서 찾아야할 정신적인 채색이 아닐까, 그러므로 묵화에서 느끼는 선(禪)의경지란 좌선(坐禪)하는 마음에서 먹을 갈고 붓과 먹에 사로잡혀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이 멋은 자연스럽게 풍기는 것으로 스스로 몸에 배어 무언중에 표현 되어야한다. 자아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왕래하며 생기는 인품의 미요,높은 교양과 인격 발로의 소산인 묵화는 서양에서는 도저히 맛볼수 없는 동양 특유의 공통적인 멋이라 할것이다.
[ 정신과현실 ]
朝鮮 王朝의 精神과 現實
우리 민족은 연대기 중에서도 조선왕조(朝鮮王朝)는 한 왕국 한 왕족으로서 아주 특이한 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완전한 중앙 집권의 체제를 갖춘 나라서 오백년이란 장구한 세월을두고 승계 되어온 왕조는 실로 역사상 오직 조선왕조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소위 일본의 국통도 실제로는 막부 시대에 이어 명치대(明治代)에와서 비로소 이룩 되었음을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은 물론 유럽에도 유례가 없다.그러나 조선왕조는 편안한 날이 없었다. 하지만 민중은 또 민중데로 스스로의 운명을 지키고 그 천품, 즉 하늘의 뜻으로 발휘 하는데 그다지 구애 받지는 않았다. 이것 또한 전제왕조(專制王朝)로서 특이한 면목이 아닐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 민중이 나타내고 또 영위(營爲)해 오던 생활 즉 그 밑바닥에 깔려있던 문화는 또한 세계 어디에서도 거의 찾아볼수 없을 만큼 특이한 성격을 띠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그 문화의 그림자가 인(印)찍힌 전승공예(傳承工藝)즉 생활의 연모로서 우리네 민예품은 바로 세계 문화사의 한 귀퉁이를 뒤 엎을 수 있는 놀라운 힘 특이한 성격 귀중한 값어치를 지닌채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아직 미치지 못하는 외진곳에 남몰래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지난날 우리들의 오만한 무지와 불순한 오류를 탓하지 않고 또 우리들의 업신 여김을 스스로 탓하지 않고 지금끗 애뜻하게 우리들의 주의를 기다리며 우리들의 주목을 부르면서 저 아득한 미의 대해(大海)속에 아니그 대해의 구름과 안개속에 가려진 신비로운 외롭게 서 있는 돌섬처럼 오직 참고 견디며 있는것이 사실이다. 조선의 민예품중 더욱 그 대중은 공예 즉 도자기 공예가 아닐 수 없다. 무릇 도자공예는 대개 사람들의 식생활에 쓰이는 물건이지만 오직 우리네 조선의 그것은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다. 조선의 도예는 이미 그궤를 달리하여 두가지로 대별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하나는 음식물을 담을 수 있는 즉 주방 기구로, 또 나머지 그 하나는 정신을 기르기에 쓰이는 문방도구(文房道具)들이라 하겠다. 그리고 일상 주방 도구로서의도자류와 또 이를 곁하여 제사에만 쓰이는 의기(儀器)로서의 도자류가 따로 있는 것이다.저 고려청자의 푸른 비색도 일찍이 송나라 청자의 그 어엿한 독존을 쉬 무너뜨렸을 뿐아니라그 송청자마저 감히 생각 해내지 못한 상감(象嵌)즉 무뉘를 유약(釉藥)속에 새겨넣는 기법과 그 위에 다시 금으로 설채한 화금(畵金)의 기법은 실로 세계 최초의 공예술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고려조가 불교의 이념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 청자에 왕생극락 하는 내세적인 환상과 차츰허무에 기울어진 유창하고 아름다웠던 귀족적인 비애가 서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탐미적(耽美的)인 기법은 이미 모두 수업을 마치고 얻어낸 곧 조선백자의 특징이라 하겠다. 불교가 고려조의 지도 이념이라면 조선왕조는 유교 입국으로 마침내 옳고 참된을 부르짖게된 현세적인 규범과 그 제도에 맞서려는 질박강인한, 서민적인 비애가 이 백자에 서려 있다 할 것이다. 유독 우리 민족만은 백자왕국에 백의민족 소복(素服)으로 상(喪)을 치르는것이 특이하다. 하나의 순수공간에 하나의 선을 그어도 한 개의 실재를 구획한 형태다. 하물며, 백자로서 문방구(文房具)를 유독 많이 만들고 또 제일 뛰어나게 만든 민족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감히 우리네의 오른쪽에 자리할 민족은이 지구상에는 없다.
세계에서 가장 연로하고 가장 방대한 문화권의 하나로 자랑하는 민족들도 우리에게 도저히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섬나라인 일본 문화권은 대조적인 면이 있다. 고려조 주조 활자가 유럽 그것 보다 이백여 년을 앞섰다는 사실 이것은 진작 우리 스스로가 알고 있었던 터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에 프랑스에서 그들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 고서를 물증으로 해서 늦게나마 세계 공인의 사실로서 받아 드렸을 뿐이다. 활자라면 말할 것도 없이 지식과 지예를 계발(啓發)하고 학문을 전수하는 문학의 모체임은 말할 것도 없다.이것이 세계문화에 있어서 제일 주자가 우리였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삼스레 가슴 벅차게 하는 일이다. 뿐만아니라,조선에 와서 문방구들 또한 제일 많이 만들고 제일 뛰어나게 만든 사실도 이와 아울러 우리 민족의 문화심이 얼마나 탁월하였던가,하는 것은 투명하게 증명하고 남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타고난 문화정신이 오늘에 와서 과연 어떤결과를 빚었는가! 제일 주자의 명예는 이제 동방에 은둔한 후진국으로서 멍에를 아직도 못벗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이는 우리가 그 역사적인 귀추와 인과 관계를 깊이 성찰하여야 할것임을 말할 것도 없고 다시 그 문화권을 한갓 지난날의 거짓이 아닌 현실에 있어서 보다 강력한 문화의 동력원으로서 끌어와야 할 것 이다.
[ 전통과 멋 ]
傳統과 멋
21세기의 시작에서 조금쯤은 여유를 가지고 살수는 없을까, 하는 것은 각박한 세정에서 사는 현대인들의 간절한 소망 일 것이다. 멋은 아마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야만 느낄수도 볼수도 부릴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멋이란 시대 사조에 따라 그 양상이나개념이 달라지는 것 같다. 가령 옛날에는 멋있게 보이고 느껴지던 것이 어느 시기가 흐르면 퇴색해 버리는 경향이 흔하다. 이것은 시대감각이나 유행성에서 오는게 아닐까? 그러나 시대 감각이나 유행성과 아무런 관계없이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유한 전통미 일것이다. 이 전통미야 말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더 찬연한 모습으로 짙은 향기마저 풍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점점 전통미의 멋을 소홀히 하고 또한 잃어 가고있는 듯 하다.그 이유야 많겠지만 정서의 고갈이 큰 원인이 아닐까? 하늘빛이 담긴 고려청자에서 느끼는 정서야 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정서는 곧 마음의 여유에서 만이 우러 나올수 있는인간의 자산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그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을 잃고 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내일 지구가 망해도, 한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어라 ”는 말은 현대인에게 가장 쉬운 여유를 일깨워 주는 철학적인 정신으로 이끌어 가는 말 일 것이다. 따라서 구 시대의 낡은 전통으로 비판 받으면서 오늘날 유행처럼 범람하는 시대의 속기(俗氣)를 건강한 사기(士氣)로 정화하는 창작상의 진정한 현대 감각을 도출하는 내일을 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얼과 정서가 맥맥히 흐르는 전통미는 하늘 아래서 그야 말로 진경 산수의 수묵화 세계속에서도 당연히 한국의 미가 흐르고 있다. 한국 그림의 아름다움이 지니는 특질은 다른 분야의 한국 미술이 지니고 있는 특질과 깊은 상관이 있다. 즉 중국 회화의 특징인 장,중,엄숙의 아름다움 으로부터 순진함으로 이탈했으며 한국의 회화는 한국 미술의 여러 분야의 세련과 특질을 당당히 지배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한국의 회화는 중국 그림에서도 일본 그림에서도 볼수 없는 야릇한 순진미와 스산한 아름다움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산세에 걸맛게 기암괴석 아름다움의 사방팔방 산세에서 야트막하고 옹기 종기한 정취를 그대로 속됨이 없이 선비의 정신이 곁들린 문기(文氣)가 흐르고 하늘빛 청자색 고여 있는 맑고 깊은 물색깔,담채로서의 수묵화와 기명절지(器皿折枝)같은 먹색의 신비와 선미의 덕풍(德風)이 숨겨져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풍토와 산세의 아름다움은 선이 독특하고 맑고 명확하다. 기교를 초월한 방심의 여유 바탕에서 성글고 거친 필치속에 스며진 멋과 선(禪)과 시(詩)의 금수강산의 노래다. 우리 조선시대를 뚫고 나간 뛰어난 작가 계열 속에서 늘 공통적인 “소산(疏散)과 야일 생략과 해학(諧謔)”의 아름다움은 우리 민족의 특징이다. (“순리 질서 속에 허물고 또 희롱 지껄이 고혹은 생략과 너털 흐트러져 보이는 그리고 미음의 순백한 여유로움의 여백 그래서일까, 한이 많은 민족 이기도 하다. 장식적으로 발달된 일본그림! 권위에 가득찬 중국 그림의 기교와 좋은 대조가되고 있을뿐 아니라, 표준 한국인 들의 한결같이 지니고 있는 미적 조형의 매무새이며 이런 것들의 방향을 정리해보면 한국 민족 미술이라는 이름을 붙일수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활 문화연구가 필요하다. 국가와 정책적으로 교육 문화적인 바탕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말하자면 공연장 박물관 전시장 모든 생활정보가 되는 조건등에 특히 외국인에게도 학습 현장들은 생활 문화 연구원으로 등장시켜 토론과 학습은 물론 실습을 통해서 자세와 좋은 작품성을 선정해서 연년히 전시회(발표)를 열고 있는 터이다.
[ 문화와 삶 ]
비가 개이고 안개가 걷히면 먼산마루에 담담하고 갓맑은 하늘빛이 산뜻하게 들어난다. 이러한 하늘색의 미묘한 아름다움은 곧장 청자(靑磁)의 푸른 빛깔에 비겨져서 우후청천색(雨後晴天色)이라는 들여다 보노라면 정말 비개인 후의 먼하늘 처럼마음이 한결 조용해진다. 마치 고려 사람들의 오랜시련과 염원 그리고 갸날픈 애환(哀歡)을 한꺼번에 걸러낸 것만 같은 푸른빛 으시댈줄도 빈정댈줄도 모르는 그리고 때로는 미소하고 때로는 속삭이는 또 때로는 짙은 생각에 호젓이 담겨있는 이 푸른 빛이 자랑스러워 고려 사람들은 비색(翡色)이라고 이름지어 불렀다.이 비색이란 말은 청자의 본 고장인 중국의 비색(秘色)청자와 구별하기 위한 말이었다.
10세기 무렵 중국 청자 비색에서 푸르른 고려의 하늘아래서 재빨리 새 모습으로 껍질을 벗었다.고려비색의 독특한 우리 민족이 깨어날 수 없는 한가닥의 영원한 꿈의 실마리가 여기에 담겨져 있다. 고려 사람들은 이미 그들의 긍지를 살려서 청자는 스스로 비색이라고 부르고 잇었으며 바야흐로 상감청자의 발생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며 그 어느해에 본격적인 틀이 잡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어 고려 도자기는 하나의 시대를 그어 놓았다.
고려 상감청자는 12~13세기 후에 고려청자 전성기가 지나고 퇴색하고 4백여년간 조선말엽에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이 세상에 일려진 것은 오히려 국내에서 보다 국외에서의 그것이 앞섰다.이미 1884년에주한 영국 초대 영사 칼스씨는 개성고분에서 발굴한 고려상감청자를 사들여서 본국으로 실어냈다. 이어 뒤이어 수많은 일본인들이 이토오의 그늘 아래서 개성과 강화근처의 고분을 함부로 파헤쳐서 수만개로 헤아리는 고려청자들을 일본으로 실어갔다.
그 무렵, 서울에서 한 일본인이 운영하는 골동품상에서일어난 웃지 못할 서글픈 일화를 말하고자 한다.하루는박식한 한국인 명사 한사람이 방문을 하여 좋은 고려청자몇 개를 보여 주었더니 그는 오히려 “이것이 어느나라사기 그릇이냐 ”고 반문하였다는 웃지 못할 사건은지금 이 시대에서도 현실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한데, 사실 우리 민족은 질박강인(質樸强靭)한 정신과 얼이담긴 삶의 터전 이기도 하다. 봄,여름,가을,겨울의계절이 분명하고 단군 왕검의 홍익정신과 성리학을표방과 표리를 이루면서 신진 성리 학도들을 많이배출하고 문화적 세계관에 주변문화를 융합하므로서찬란한 문화와 금수강산에 밭을 갈고 씨를 뿌렸던자연 순리에 젖어온 민족이다. 21세기에 가는절묘한 시류에서 문화가 없는 사회 여백이 없는어두운 사회가 되어서 는 안되겠다.
정치나 법을아는 사람들이 벼슬을 사고 팔고 명예나 재물을 쉽게 얻기 위하여 방법을 연구하고 학문을 나쁘게도용해서 희롱하는 지식층이 많은 사회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문화민족은 마침내 강인질박하고 찬란한 역사 유물과 현실적인 독창성 개발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그렇다면 대가없는 욕심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이러한 생각으로 그 사람과 사물들을 판단한다면 착각속에서 뜻이없는 현실이 현대인들은 영리하게 생각하여야 될것이며 영리한 것은 몸과 마음을 가장 옳은 일에 끌어 넣어야 할것아닌가?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렸는가, 깊은뜻은 순리와 질서부터 익히는데는 건강한 정신과 인격 성숙이 되어야 될것이며 독립,자주,창조등으로서 삶의 깊뜻은 21세기 문화의 세계로 가는 길밖에 없다.
[ 창작과 역경 ]
학문과 진리는 고뇌로서의 자세와 한마디의 말뜻은빛이 될 것이며 어둠에 잠겨있는 삶의 환희를 밝혀주는 등불이 될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위기와 고뇌가 있을 때슬기와 지혜보다도 죽음과 같은 극단적이고 나쁜 죄를 범하는 쪽으로 자신을 몰고 가서 궁지에 빠지기도 한다.
마음이 그 같은 곳에 있다는 것은 생각이 작아서 눈앞의 역경에 짓눌려 실패가 오기 마련이다. 법학자 힐타는”인간의 최대 행복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부지런한 일로서만 이루 워 진다”고했다. 그렇다 부지런함은 신체의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만들 것이다. 즐거움과 창의 뜻을 맛보는 것이 인생의 가장 맛좋은 열매를 얻는 것이다.
따라서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을 탄생시키고 문명 문화의 바탕으로서의 역사들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순조로움을 바라고 순조로움에는 반성의 자취와 창의적인 깊은 생각이 없다면 살아가는데 영리하지 못하다 할것이다. 엄격하고 참마음의 인간미를 지닐수 있다는것은 역경과 고뇌의 소산이다. 학교에서 배운 학문은 비바람에 견디면서 자란 사람이 갖는 신념과 정신의 깊이가 없다.
인간은 역경에 처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이에 저항하여 살아간다.이러한 정열이 인격의 형성에 뜻깊게 작용하게 된다.훌륭한 사람은 그 용모와 태도에 뛰어난 품위와 아름다움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고뇌를 맛볼 수 있어야하며 인간에게는 고뇌가 뒤따라 다니기 마련이다. 인간에게는 우선 작은 인간 큰 인간으로 보이는 순간들 가운데 훌륭한 저술가, 예술가,실업가,사상가,철학자등 또한 가정으로서의 의(衣),식(食),주(住),속에는 사랑과 품위가 담겨져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고뇌를 받아 들이는데는 체면도 허영도잊고 마음껏 슬퍼 함으로서 진리를 배우고 삶의 아름다움을 얻게 되지만 능력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싫증과 꾸준히 살아감에 포기하고 자신의 삶의 용기를 잃게되며,일반적으로 괴로워하고 고민을 하는 것은 나뿐이라고 들생각을 하게 된다.인간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데 지혜와 질박한 마음으로 성실하고 충실한 노력은 반드시 고뇌를 풀고 역경을 넘겨 가는 것이다.
약육 강식의 세계를 합리 쪽으로 자신의 인생을 몰고 가서는 안될것이다. 공통된 정신세계를 표현한 모든 철학자나 예술가, 저술가, 사상가들은 이러한 다 할수 있는 지혜와 충실한 삶으로 아름다운 죽음과 신의 경지로 가는것부터 알게 되는 것을 배우게 되었을 것이다.아마 그런 이유로 황금을 탐내지 않았을 것이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고 과학이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라고 하였다. 수학자 파스칼은 “많은 종교가 서로 상반되어 있는 것을 볼수 있다. 따라서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허위이다. 어느 종교나 그 자체의 권위에 입각해서 믿어지는 것을 바라고 믿지 않는 자를 위협한다.” 라고 말했다. 철학자 칸트는 “그리스도교나 불교는 근본정신은 하나이다. 각기 다른 길이 있다고 설교한다면 악 일뿐이다.” 라고 말했듯이 인간의 행동에는 착한 행동에 두 가지가 없기 때문이다..성인군자는 이것을 가장 가깝게 가르쳤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신과 황금을 동시에 섬기고 있다.
사상가인 톨스토이는 “예술은 아무 것도 하는 일없이 놀고 먹는 한가한 오락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상을 맑게 하고 영혼을 향상시키고 뜻있는 생활에 노력을 기울게 하는 것이 예술이다.”라 하였다.고대 로마시인 세네카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을 남겼다. 우수한 예술작품은 죽은 뒤에도 살아 있다는 뜻은 명예로운 이름보다도 인류가 생존하는 한 영원히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그의 창작에 전부를 몸과 마음을 던져 노력한다. 예술이외의 다른 부분에도 마찬가지이다. 조각가 로댕은 “아름다운 미는 어디에도 있다. 그것은 결코 우리의 시야 속에 없을리 없는데도 우리의 눈이 그것을 알아 보지못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전통과 현실 속에서 새로운 차원(次元)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